제가 속한 침례교단 총회가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에 걸쳐 강원도 평창에서 열렸습니다.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는 장로교단의 장로주의 정치체제라든가 감리교단의 감독주의 정치체제와는 달리,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운 회중주의 정치체제를 기반으로 합니다.
침례교단의 가입자 즉, 구성원은 "개별교회"이며, 가입된 각 교회는 정해진 기준에 따라 최소 1명에서 최대 3명까지의 "(총회)대의원"(messenger)를 보내, 향후 1년간의 회기 동안 수행할 각종 협력사업을 결정하고, 그 과업을 실행할 책임자를 선출합니다. 그렇게 선출할 최고 책임자를 총회장이라고 부릅니다.
총회대의원은 총회장의 소집공고에 응하기로 한, 각 교회가 총회대의원 등록 절차를 거쳐, 총회대의원권을 가진 각 교회 대표자들이 회집하는 것이 침례교단의 정기총회입니다.
지난 9월 18일에 시작된 정기총회는 제113차 정기총회이며, 그 둘째 날에 선출된 총회장은 제113차 총회장으로서 임기는 10월 1일부터 2024년 9월 30일까지입니다. 선출된 총회장으로서는 제79대 총회장이지만, 침례교단에서는 총회장 권한이 총회장에서 (선출된) 차기 총회장에게로 넘어가는 개념이 아닙니다. 제112차 대의원들의 회기가 끝나기 직전에 제113차 대의원들을 구성하고, 제113차 대의원들이 제113차 회기의 총회장 및 의장단을 선출하고, 선출된 의장단과 함께 사업을 결의하여 확정하는 방식입니다.
제113차 정기총회와 총회장 선출과정은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정기총회가 종료된 직후에, 그 소감을 정리한 글을 교단신문인 침례신문에 송고했고, 10월 14일자(1496호)로 발행되는 신문에 싣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10월 10일 조판까지 끝냈으나, 신문사 사장의 결정에 의해, 나의 다른 글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와 명품 번역성경(4)>로 바뀌었습니다. 하여, 조금 긴 글이지만 정기총회 참석 소감문을 여기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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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차 정기총회 유감 定期總會 有感
-총회의 주인은 대의원이다!-
이유도 역사도 모르면서 기독교 개신교단들은 거의 예외없이 9월 무렵에 연차(정기)총회를 치른다. 외형적으로는, 각 교단 최고법규가 규정한 교단장(총회장)의 임기가 종료되기 전에, 차기 교단당을 선출하고 보좌할 임원들을 인준하여 교단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침례교 계통 즉, 회중주의와 형제단 운동에 뿌리를 둔 교단들을 제외한, 기독교 교단들의 경우 교단장(총회장)이 곧 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교단장을 정점으로 해서, 상하관계 및 위계질서라는 것이 존재하고 강력하게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총회장이 ‘(총회)유지재단’ 재단이사장직을 겸임하면 그야말로 교단의 (1년 임기의) 명실상부한 주인이라는 의미에서의 교단장이다. 따라서 교단법규(헌법, 헌장)에 규정된 시기에, 규정된 방법으로 신임 총회장을 선출하여, 의사봉 혹은 교단기를 넘기지 못하면, 법리적 의미에서는 주인이 없어진 상태 혹은, 교단 와해의 비상사태가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 잘못 대처하면, 누가 진짜 총회장인가를 놓고 심각한 충돌과 교단분열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체제에서의 정기총회는 정치의 각축장, 정치권력 쟁탈을 위한 전쟁터가 되기 마련이다.
만일 우리 교단이 장로교식이라면 제77대 총회장(고명진)에서 제78대 총회장(김인환)으로 총회가 이어졌고, 금번 제113차 정기총회에서 제79대 총회장으로 선출된 이종성 목사에게로 의사봉이 넘겨짐으로써 총회장 지위가 계승되고, 총회가 존속한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우리 침례교단은 이런 원리가 결코 아니다. 그렇게 따지지 않는다.
침례교단은 총회규약에 의거하여 회집한 제111차 정기총회에서 총회대의원들이, 제112차 회기를 존속할 수 있도록 모든 권한과 직무를 맡길 모든 조치를 완료했다. 이 처리업무에 총회장과 임원들을 선출하고 각종 현안들을 인준하는 작업이 포함된다. 이런 식으로 총회를 회차를 넘겨 존속시킨다. 제111차 회기가 종료되기 직전에 선출된 제112차 회기는 2022년 10월 1일로부터 시작하여 2023년 9월 30일에 끝난다. 마찬가지로 제112차 회기가 끝나기 전에 제113차 회기를 출범시키는 작업을 위해 제112차 회기 내에, 제113차 정기총회를 소집한다. 여기에 제113차 총회대의원 자격을 등록하라는 공고가 더해진다. 따라서 총회대의원 등록이란, 실재하는 총회(교단) 구성원(교회)들 가운데 회기를 존속시킬 책임에 동참하겠다는 의사표명인 셈이다. 멍에를 함께 멘 구성원(構成員)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침례교단은 정기총회 현장에서 총회장이 의사봉을 차기 총회장(당선자)에게 넘겨주고, 의사진행을 하더라도 이것은 상징적인 의례일 뿐, 제113차 정기총회 회무를 비롯한 총회 이벤트 전체가 9월 30일까지가 임기인 제112차 총회장의 책임이다. 제113차 총회장은 2023년 10월 1일부터 시작하는 회기의 총회장이다. 실제로는 10월 1일 이후의 어느 한 날에, 제112차 총회장 및 임원들로부터 제113차 총회장과 임원들이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그에 따라, 제1차 임원회를 개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제113차의 직무가 집행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방식에서는, 침례교는 총회장이 교단의 주인 혹은 최고 통치자가 아닌 것이다. 교단의 최고 어른도 아니다. 현직 총회장을 선출한 해당 회기의 총회대의원들의 대표자이되(그래서 최고의 존경을 받아 마땅하지만), 장로교단 혹은 감리교단처럼, 대의원들의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즉, 전권을 장악한 통치자가 결코 아니다. 권력가가 아니다.
총회장은 총회규약과, 총회대의원들의 결의에 묶이고 권한이 제한된다. 총회규약을 준수케 하고 기관들을 감독하고 총회결의를 집행하여 총회대의원들에게 보고할 책임을 진다. 물론, 교단 외부에 대해서는 교단의 대표자 역할을 하지만 교단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일개 총회대의원이다. 총회규약에 모든 피선거권자 및 공직 취임자들의 기본 전제조건이 ‘총회대의원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113차 총회장은 제113차 총회대의원들 가운데 한 사람의 총회대의원이다. 총회대의원은 그를 파송한 교회의 크기, 교단에 대한 기여도, 물질적 기여도를 포함한 일체의 외적 조건에 상관없이 모두 평등하다. 모두 대등하다. 모두 독립적이다. 계급이 없고 우열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격의없이 토론하고 사안을 결정하고 자발적으로 협력한다.
총회대의원이 교단의 주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개별교회의 본질이 회중이며 회중이 곧 교회인 회중주의 원리에 따르면, 교인총회 즉, 사무처리회회에 최종 의사결정권이 있는 것처럼 교단사무의 최종의사결정권은 대의원들의 총회 즉 정기총회에 회집한 총회대의원들에게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총회대의원들은 총회장 및 총회직무를 맡은 이들과는 아주 다른 점이 있다.
총회대의원들은 총회규약의 틀 안에 종속된 측면도 있지만 총회규약 자체를 뛰어넘어, 그 상위에서 총회규약을 지배하고 해석하고 통제하는 권한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안건에 따라, 총회결의가 총회규약을 범함으로써 불법결의를 한 것이 되어 원천무효가 되는 경우도 있고 (문자적으로, 관례적으로) 불법결의를 한 지점이 있기는 해도 실상 불법결의가 아닌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제1부총회장이 후보자 예비등록을 접수완료한 뒤에, 뒤늦게 후보자의 목회경력이 의장단 입후보자 자격규정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다. 늦게나마 자격규정의 해석에 관련하여 다방면으로 고심하고 연구한 끝에 선관위는 입후보 자격이 없다고 최종유권해석을 내렸고, 이 사실을 당사자에게 통보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선관위가 맞았다. 그러나 그 이후 업무처리에는 아쉬움이 있다.
논점은 군목경력이 목회경력인 것도 맞고 대의원권 자격에도 문제가 없고 피선거권이 있는 것도 맞는데, 의장단 자격규정에는 저촉이 되는데, 이는 분명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억울함이 있는 것이다. 이 ‘억울함’을 해소할 방안은 법리적으로는 해소할 방안이 없다. 장로교 방식이라면 먼저, 총회규약의 의장단 자격규정에 “단서” 조항을 붙임으로써 문제를 해소한 뒤에 출마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제113차에서 규약 수개정이 이뤄지더라도 1년 뒤인 제114차 의장단에 출마해야 한다. 그러나 침례교 방식은 다른 트랙이 가능하다.
선관위가 제113차 정기총회 회무(규약 수개정)에 직접 청원하여 2/3 동의를 얻어 단서조항을 삽입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그 애매한 부분을 제113차 총회대의원들의 판단과 결정에 맞기기로 하여, 가등록 상태를 유지해주는 방법도 있다. 선관위는 총회대의원들에게 충분한 정보와 설명을 제공하여, 총회대의원들이 현명한 결정을 내리도록 안내하면, 피차 원망이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사업에서, 일군들이 피차 원망이 없도록, 하나가 되도록, 원만하게 처결하는 것이 성경이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교훈이며 도덕성이기에, 규약규정의 문자 그 자체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우리들의 정기총회가 마치 검투장처럼 되었고,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하기 위해 격돌하는 전쟁터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렇게 바뀔 때에는 총회대의원 각각이 1표로 계산하는 정치공학, 선거공학, 그리고 선거전략이 우선시 된다. 전쟁터에서는 이상과 도덕이 무시된다. 상대진영의 선함은 눈에 보이지 않고 오직 악함만 바라보고 세력의 취약점만 찾는다. 이길 생각만 한다. 적군과는 거래와 타협만이 있을 뿐이지 진정한 화합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악은 모든 곳에 있다. 우리 편에게도 있다. 적군을 격파하고 점령한다고 해서 점령지에서조차 악이 사라지지 않는다. 옳음이 이겼다고 해서 복음적 정의가 구현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싸움은 날로 격화되고 중요사안은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선거전략에 이용되었다. 교단은 물질과 세력을 중심으로 편가름 되고, 마치 군웅할거 시대처럼 되어갔다. 누구 편이냐는 말이 일상화되고, 배신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빈도가 커졌다. 이런 흐름이 거센 조류를 형성할 때 어떤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장로교, 감리교의 거대 교단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이 길을 걸어갔다. 깊숙이 빠졌다.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교단은 정치집단화되고 말았다. 교회들은 정치체계에 예속되었다. 대형교회를 지배하는 자가 왕 노릇 한다. 착한 왕도 있고 악한 왕도 있지만 모든 것이 정치적 해석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교단의 제113차 정기총회 대의원들은 이 거센 조류를 막아냈다. 옳은 자가 이긴 것도 아니고 악한 자가 이긴 것도 아니다. 어떤 세력이 이긴 것도 아니다. 노련한 선거전략이 주효했던 것도 아니다. 아무도 이기지 못했다. 침례교 정신, 복음의 협동정신을 사랑하고 그 자리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열정이 힘을 모았다. 따라서 굳이 이긴 자를 거명하자면 ‘총회대의원(들)’이 이겼다. 복음과 침례교 정신이 이겼다. 총회대의원들은 총회를 제자리에 돌려놓기를 원했다고 그 의사를 표명했다. 이 놀라운 현장에서, 대단히 특별한 감정이 없을 수 없다. 정말이지 有感이다.
이것이 회중주의의 강력한 장점이다. 회중주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적이다. 정말이지, 감동 그 자체이다. 제113차 정기총회 선거결과만 놓고보면,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떨쳐버려야 한다. 제113차 정기총회에 모습을 드러낸 총회의 주인과 그 주인의 심장과 뜨거운 열망을 직시해야 한다. 그 정신 앞에 자신을 겸손히 낮출 때 상처입은 자존심이 치유되며 건강한 자존감을 갖게될 것이다. 열패감은 복음적 반성을 통해 더 나은 성취로 나아갈 힘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상큼한 승리를 가슴에 담고 하나가 되어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침례교인들은 이렇게 역사의 비탈길을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면서,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