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07.]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
|
|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와 명품 번역성경(2)
아래 글은 속한 '기독교한국침례회'의 교단 신문인 '침례신문' 제1493호(23.09.02일자)에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와 명품 번역성경(2)"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
.
성경침례교회는 그 원조가 말씀보존학회의 이송오이다. 다시 말하면, 기존에 성장하고 있던 어떤 나무에서 가지가 새로 돋아나고 뻗어나간 그런 측면에서, ‘성경적으로 잘 한다’라는 이상과 ‘침례교 정신’이라는 이상이 정상적으로 안착한 사례로 볼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라는 이상을 중심으로, ‘킹제임스 유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시작된 신흥 종파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지금은 김포에 자리잡은 성경침례교회가 본래 말씀보존학회 이송오씨가 ‘킹제임스 유일주의’에 동조하는 이들과 함께 1992년 4월에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창립한 교회다. 췌장암으로 투병하던 2022년 1월에 사망한 이송오씨를 이어 박승용 목사가 제2대 담임목사로 이끌고 있다. 이송오는 미국의 Pacific Coast Baptist Bible College(신학사), Liberty University(석사), California Graduate School of Theology(신학석사, 박사) 등에서 수학하였다. 무엇보다도 미국 펜사콜라 성경신학원(PBI)의 피터 럭크만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고,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KJB Onlyism)라고 알려진 사상을 따라고, 사실상 한국에 도입했다.
이송오 씨가 거친 학교들은 우리 교단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남침례교회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Pacific Coast Baptist Bible College는 Heartland Baptist Bible College의 다른 이름이며 오클라호마 주 오클라호마 시에 위치해 있다. 이 학교는 사립학교이지만 한국성서침례교회의 뿌리인 국제성서침례교회 친교회(Baptist Bible Fellowship International, BBFI)의 인준 신학교다. 이송오씨가 수학할 무렵에는 근본주의적이며 세대주의적인 성향이 매우 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Liberty University는 저 유명한 복음주의적 설교자 제리 폴웰(Jerry Falwell)이 1971년에 세운 사립학교로서, 이 학교 안에 리버티 신학교(Liberty Baptist Theological Seminart)가 포함되어 있다.
제리 폴웰은 교단에 구애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행동했다. 어떤 자료에는 BBFI(즉, 성서침례교회) 소속이라고도 되어있다. 분명한 것은 1996년에, 제리 폴웰 목사가 미국 남침례회 버지니아 주 총회에 가입했고, 1999년 11월에는 리버티 대학, 따라서 리버티 신학교가 남침례교 총회 인준신학교가 되었다.
이송오씨가 발행한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통권300호(2017년 3월)에 게재한 칼럼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송오는 1986년 무렵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을 시작하여, 1990년에 신약성경 번역을 내놓았다. 이 연대를 참조하면, 이송오가 비록 침례교인이라고 자처하더라도 미국 남침례교회 혹은 북침례교회와도 사상적 관련이 없다. 즉, 역사적 정통적 침례교인의 정체성에서는 우리와 동류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송오는 침례교인들로부터 침례교인의 정신을 익히고 침례교회를 목회하는 과정에서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라는 관념을 접목시켜 발전시킨 것이라고 볼 여지가 없는 것이다.
영국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이라는 신대륙에서 ‘영어성경’ 특히, King James Version이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KJV이 비할 수 없이 독특한 역할을 하였기에 그에 준하는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우리가 미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의 국호는 United States of America이다. 이는 많은 국가(State)들이 America라는 이름으로 연합(United)하였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USA)는 50 개의 국가들이 각국의 고유한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연방국을 결성하였다. 따라서 모든 미국인은 주정부와 연방정부, 2개의 정부를 가지고 있는 데 이 두 정부는 상하관계라기보다는 서로 역할이 다른 별도의 정부다.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이런 정부형태가 많았다. 실제로 영국은 연합왕국이고, 독일은 연방공화국이고 독일의 전신인 신성로마제국(혹은 독일제국) 역시 연방체제다. 네덜란드 역시 연방체제다. 심지어 황제 혹은 국왕에게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자유’ 즉, 일정한 자치권을 획득한 도시들이 동맹조약을 맺어, 마치 연방국가처럼 행정하고 재판하고 군대를 보유하고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
일찌감치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단일왕정 체제로 발전한 프랑스의 경우도, 오늘날 경찰 이외에 헌병군이라는 무장조직을 육군, 해군, 공군 각군의 산하에 두지 않고 별도로 독립시킨 군종 즉, ‘국가헌병군’으로 설치하되 국방부가 아닌 내무부 산하의 기관처럼 내무부 장관이 조직, 관리, 운영을 책임지며 국립경찰의 역할을 수행한다. 프랑스가 이 독특한 제도를 운영하는 배경은 비록 단일왕정체계와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도의 역사가 있지만 귀족가문들의 영향력이 지방행정과 경찰조직에 여전히 강력한 탓이다.
이러한 유럽 각국의 주민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자신들의 모국어로 집단과 도시를 이루고, 지역을 장악하기 일쑤였다. 독일에서 건너온 아나밥티스트들 즉, 아미쉬파는 오늘날까지도 17세기 독일어를 사용한다. 네덜란드 이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뉴욕은 본래 네덜란드 이주자들이 만든 “뉴 암스텔담”이었다. 네덜란드어를 일상어로 사용했다. 네덜란드인들끼리 도시 즉, 일종의 공화국을 만들었던 것이다.
수백개의 ‘나라’가 난립할 수 있었던 신대륙을 “영어”를 표준어로 사용하는 하나의 체계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이 프랑스를 몰아내고 스페인-포르투갈 세력을 몰아낸 것이 전부가 아니다. 유럽인 모두의 공통분모인 ‘기독교’를 ‘영어’라는 공통분모를 만들어 하나로 만드는 데 성공했기에 오늘날 미국(USA)가 나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고, 잉글랜드인들의 ‘영어’를 미국인들의 영어로 만들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1611년에 모습을 드러낸 ‘영어성경’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 후대의 무수한 개정본들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킹제임스 유일주의자들이 의도적으로 간과하는 것은 1611년판 즉, 오리지날 KJV을 사용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먼저,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1세는 잉글랜드 국왕으로 즉위할 때까지의 잉글랜드 종교개혁을 부정하고, 앵글리칸을 다시 로마 가톨릭으로 되돌리려는 정책을 견지했다는 점 또한 킹제임스 유일주의자들이 간과한다. 튜터 왕조 특히, 헨리 8세로부터 시작해서 엘리자벳 여왕이 죽을 때까지는 메리 여왕을 제외하고는 일관되게 로마 가톨릭과의 단절을 전제로 했다.
제임스 1세는 앵글리칸의 지속적인 개혁청원을 노골적으로 거부했다. 따라서 1611년에 출간된 ‘영어성경’의 목적은 영국 종교개혁운동을 결정적으로 저지하고, 앵글리칸을 ‘로마 가톨릭’으로 되돌리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1611년 KJV은 로마 가톨릭이 인정하는 외경을 포함하였고, 예수의 모친 마리아를 숭배하고 찬양하는 도안과 문장이 서슴없이 사용되었다. 게다가 킹제임스 유일주의자들이 그토록 배격하는 라틴 벌게이트를 참고하여 번역했다.
1611년판 번역작업에 참여했던 이들 가운데 몇몇은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개정판을 출판했다. 킹제임스 유일주의자들은 이 출간을 ‘인쇄상’의 오탈자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1611년판을 ‘신성시’하여 번역영감 혹은 이중영감을 주장하니, 결코 오류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 로마 가톨릭의 교황무류설과 다를 바가 없다. 1611년 판 이후에 나온 무수한 개정판이 나와 대체되었고, 세대주의자들과 킹제임스 유일주의자들조차도 1611년판이 아니라 18세기 후반의 판본을 대본으로 삼아 번역한다. 그럼에도 온갖 구실을 대며 마치 1611년판을 사용한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 우상화 이념작업을 ‘러크만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이지 타당하다(계속).
|
|
|
교회론이 가장 중요하다!
신학책을 열심히 보는 사람은 "조직신학"이 조직신학의 여러 부문 중에서도 "구원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기 십상이다. 신론은 난해하고 구원론은 복잡하여 정신차리기가 쉽지 않다가도 막상 교회론을 들춰보면 허망하다.
쓸만하게 교회론을 다룬 신학개론 혹은 조직신학 책을 찾다가 일찌감치 포기했다. 교회론의 기본원리를, 기독교 신론에서구원론을 관통하여 일관되게 저술한 책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 결과, 한국교회 교회론은 "제자훈련"이 장악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장로교 교회론은 헌법과 정치문답조례를 잘 연구하면 확실히 알 수 있지만 목회현장에서는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흘러나온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에 의해 장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의 성공과, 사랑의 교회 리더십이 옥한흠 목사에서 오정현 목사에게로 옮겨갈 무렵에 등장한 G-12는 이 경향을 더욱 강화시켰다.
필자가 1980년대 초반에 군복무를 마쳤을 때 곧바로 학부 3년으로 복학하지 않았다. 1년을 더 쉬면서 부족한 공부를 더 채우기로 했다. 그리고 수원에 소재한 "합동신학교" 근처의, 합동신학원 측 교단에 속한 장로교회에 출석하기로 했고, 파트타임 교육전도사로 봉직하기도 했다. 당시에 이 교회를 개척한지 몇 년 안 된, 서 목사님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교세가 날로 팽창하던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님과 각별했던 관계였는지, 사랑의교회 제자훈련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거의 완벽하게 도입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에, 옥한흠 목사님이 직접 인도하는 제자훈련 세미나가 개시되었고,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 <평신도를 깨운다>는 100쇄를 넘기고, 영어를 비롯하여 11개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정말이지, 대단한 책이다.
이런 책을 미욱한 필자가 함부로 평할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는 솔직하게 소견을 밝히고 싶다.
첫째,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의 성공은 대개의 경우 "양적 측면"으로 평가되기가 쉽지만 그 양적 성장의 밑바탕에는 남다른 설교역량이 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물론, 그 역량은 상대적인 것이다. 청교도적 설교에 목말라 있던 한국교회 신자들의 상식적인 인지능력에 부합하는 쉽고 좋은 설교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하고 시행하는 시스템에 한계가 있었기에, 전성기를 맞이 하면서 체력이 감당이 되지 못했다. 점 더 길게, 그리고 후반부에 더욱 개선된 설교를 하지 못한 것이 내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다.
둘째, 사랑의교회 성장은 제자훈련과 강해설교라고 말할 수 있지만 <평신도를 깨운다>는 책은 옥한흠 목사의 목회철학 및 정신을 정리한 것이고, 실제로 교회성장을 이룬 것은 특색있는 설교와 <다락방> 체제로 이룬 것이고, 설교와 다락방 시스템의 밑바탕에는 C.C.C. 순모임을 교회적 맥락에서 약간 다듬은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랑의교회 다락방, 즉 제자훈련은 "전도 목적"에 최적화된 "small group"의 다단계, 증식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여기에는 철학이라고 할 것이 없는 셈이다. 그래서 목회철학을 도외시하고 따져본다면,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구역모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옥한흠 목사가 직접 "다락방"과 "제자훈련"을 개량하여, 새로운 모형의 "제자훈련" 및 소그룹 시스템을 개발하였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아쉬움이다.
셋째, 엄밀하게 따진다면 한국교회가 좇아온 "제자훈련"과, 옥한흠 목사가 <평신도를 깨운다>를 저술할 때 참조한 교회론은 로마 가톨릭 교회론이라 할 수 있다. 한스 큉이 언급되는 것이 그 증거 가운데 하나인데, 옥한흠 목사가 이에 대해, 개신교 교회론을 참고하고 싶었으나 참고할만한 책이 없었고, 그나마 한스 큉의 책에서 참조할 것이 있었다고, 그래서 개신교-장로교회 목사의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소화하면서 참조했다고 옥한흠 목사가 소회를 밝혔던 기억이 필자의 뇌리에 남아있다.
그런데 옥한흠 목사가 잘 알지 못했던 것 2가지를 지금 우리는 잘 인식해야 한다. 첫째, 20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제자훈련"은 그 발상이 로마 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전후로하여 로마 가톨릭의 중남미 교회들이다. 중남미 교회들에게서 그 어떤 현상들이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수준으로 이론화하고 체계화했다.
소그룹 운동가들이 "소그룹 운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종교개혁가들 그리고 존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을 연구하고, 서사를 만들었지만, 그리고 G-12로까지 발전시켰지만 "소그룹 운동"의 원리는 실상, 로마 가톨릭의 중남미 교회에서 발생한 그 틀의 테두리 안에 아직도 발을 걸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둘째, 종교개혁가들의 싸움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조금씩 전선이 바뀌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 시작 시점에서는 교황의 사면권 남용이 초점이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의 세월이 넘어가면서 구원의 원리가 무엇인지가 초점이 되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기독교 신학체계를 정비하면서 기독론과 구원론을 체계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칼빈이 죽을 무렵에는, 성례전론의 정립으로 이어졌다. 물론, 루터와 쯔빙글리 사이에 성례전 논쟁이 심각하게 벌어졌으나, 정통 개신교 입장이 정립된 것은 칼빈의 등장 이후이며, 이를 완벽하게 이론화한 공로는 피터 마터 버미글리에게로 돌아간다.
칼빈의 죽음, 바로 그 무렵에 트렌트 공의회가 끝나면서, 종교개혁에 대한 가톨릭측의 입장이 완벽하게 정립되었고, 이로써 실질적인 "로마 가톨릭"이 시작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로마 가톨릭" 즉, 천주교라는 체계는 16세기 중엽의 체제이며, 이를 20세기 중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약간 업그레이드한 버전이다.
즉, 우리가 중세 라틴교회 혹은 중세 서방교회라고 알고 있는 "중세 가톨릭과" "로마 가톨릭"은 엄밀하게 따지면 완벽하게 다른 교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체로 "중세교회 = 로마 가톨릭"이라는 등식을 자연스럽게 "참"(true)라고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혼란이 생긴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그 기간에 종교개혁 진영은 16세기 중반에 새롭게 수립된 로마 가톨릭과 완벽하게 결별한, 새로운 그러나 초대교회 교회론을 계승하는 "종교개혁 교회론"을 찾아내고 확정해야 했다.
당연하게도 종교개혁가들의 신학과 교회론은 중세시대 신학의 연장선에 있다. 그 연장선의 어느 요소들이 비성경적인지를 찾아서 초대교회 신학에 걸맞은 것으로 갱신하고 개혁해야 했다. 당연하게도 중세교회의 연장선에서 "로마 가톨릭"이라는 변종으로, 오류 시스템으로 오류를 증폭시켜 진행하기로 한 부류들과는, 중세교회와 중세신학이라는 점에서 종교개혁 진영과 일정한 부분이 겹친다.
그 겹치는 부분 가운데, 교회론 분야에서 17세기 종교개혁 진영에서 논쟁이 벌어진 중요한 부분이 "보편교회론"이다. 잉글랜드 회중주의자들은 종교개혁 진영의 다른 이들 즉, 장로주의자들과 개신교 감독주의자(앵글리킨)들과 전통적인 보편교회론을 로마 가톨릭과 단절하듯이 교회론에서 제거해야 할, 중세적 오류의 잔재라고 보았다. 이 부분을 신랄하게 지적한 글이 청교도 신학자 토마스 굳윈의 저서에 잘 정리되어 출판되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있기에, 장로교 목사이며, 신학적 성경해석이 가능해야 할 수 있는 강해설교자인 옥한흠 목사가 로마 가톨릭의 주요한 교회론 신학자인 한스 큉의 저서에서 참고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스 큉은 내가 얼핏 알기로, 매우 특별한 신학자다.
16세기~17세기 종교개혁가들이 지적한 오류들을 고수하기로 하면서 로마 가톨릭이 출범하였지만 수백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로마 가톨릭은 반동종교개혁을 통해 그 오류들을 수정한 측면들이 있다. 물론, 매우 중대한 교리들에 있어서는, 오류를 심화시키고 강화한 측면이 있지만, 교회론의 몇몇 요소들은 변화를 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마치 개신교 진영쪽으로 다가가자는 식의 제안을 한 것이 한스 큉이라는 신학자다. 그런 까닭에, 한스 큉은 로마 가톨릭 내부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대단한 신학자로 인정받으면서도 요주의 인물로 찍힌 사람인 반면에, 개신교 신학자들 중에서도 매우 주목하여 참고하기도 하는 신학자이기도 하다.
옥한흠 목사 이후에는, 한국교회의 교회론에 대해 의미있게 고민하는 이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것은 미욱한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대단히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장로교 목사들과 신학자들은 17세기 혹은 19세기 후반의 신학으로 복귀하면 되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식으로 발언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교회를 막연하게 생각하고, 올바른 신앙생활과 교회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다. 주일예배 출석을 잘하고, 헌금 잘하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어떻게 작동되게 하여야, 어떤 모습이 되어야 건강한 교회인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거의 모른다. 이렇게 모른다면, 좋은 교회가 나올 수도 없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도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21세기 신자들에게 꼭 맞춤의, 종교개혁 신학을 정확하게 반영한 그런 교회론이 지금이라도 나와야 한다. 지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이고, 시도라도 해봐야 한다.
|
|
|
|
좋아요, 구독, 그리고 가입을 눌러주시고 물심양면의 후원은
동영상 제작과 미디어 선교활성화에 큰 도움이 됩니다.
질문 혹은 의견을 아래 이메일 주소로 보내주시면, 성심을 다해 반영하겠습니다.
All Rights reserved
본 메일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 유포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발췌하여 다른 미디어에 포함시키거나 전제하는 것은 저작권자로부터 별도의, 명백한 허락을 받아야 하고, 허락 받은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