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6]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
|
|
이단은 무엇을 약속하나?
2014년 세월호 사건으로 구원파 이단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펼쳐질 때 신천지가 '이단'으로 국민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최근에는 단국대 수학과 김도형 교수라는 분이 JMS 정명석 이단을 30년간 추적하고 수집한 자료를 근거로 하여 그 추악한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김도형 교수에 따르면, 과거에도 공중파 방송에서 JMS 정명석을 비판하고 정체를 밝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하였으나 1편이 방송되면 JMS측의 공작에 의해 방송국이 JMS측과 타협하여 방송을 중단한 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번에는 방송국 측 제작진에서 강력한 의지를 보였고, 넷플릭스를 통해 JMS 3편을 올림으로써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국졸이라는 학력뿐인 사람이 일류대학 재학생들을 회유하고 노예처럼 예속시킬 수 있는지 궁금해 한다. 이 현상이 기이하게 보이는 까닭은 몇 가지를 놓쳤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걸맞은 '기량'과 '노우하우'가 필요하다. 시대마다 '종교적 재능'이 탁월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이 재주꾼들이 '걸출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걸출한 '노우하우'와 기본토대를 갖춰야 한다. 이 때문에 제법 성공했다고 분류되는 이단에게는 '족보'가 있다.
JMS가 시작될 때 정명석 주변에 소위 '독수리5형제'라는 이들이 JMS의 기본교리를 체계화했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빈손으로 괴이한 이단설을 만들었다면 그냥, 어설픈 '삼류 종교'를 창립했을 것이다. '교회'라는 외투를 뒤집어 쓰고 마치 교회인 것처럼 위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위장에는 번거롭게도 위장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JMS가 하나의 집단을 형성할 때 무분별한 젊은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두려움과 욕망'을 자극하고 부추겨서 '성'(섹스)과 '돈'과 '성공'(명예)을 엮어서 만든 올가미에 스스로 뛰어들도록 만들도록 한 것에도 '소위' 계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정명석 이전에 '성공한' 이단의 것을 베꼈기에, 시행착오를 건너뛰어 자신을 위한 집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JMS의 추악한 성착취와 앵벌이, 그리고 폐쇄적 집단화는 '통일교'의 것을 사실상 그대로 베낀 것이라는 평가는 진작부터 있었다. 그런데 통일교가 사람들에게 추악하게 각인된 것은 '피가름'(혹은 피갈음)교리라는 것인데 JMS 정명석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난교파티' '성착취'는 사실상 '피가름' 교리의 변형 혹은 적용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1950년대에 전도관의 박태선과, 통일교 문선명의 '피가름' 교리가 문제시되었는데 이러한 문제제기에 전자는 부인했고 통일교측은 침묵했다고 한다. 문선명은 이 교리를 김백문 정득은에게서 계승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원조격인 김성도와 유명화가 있다. 그러나 하나의 괴이한 교리가 아니라 이단종파로서, 어떤 운동력을 갖추고 사람들을 끌어모아 조직화를 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갖추거나 가져와야 한다. 따라서 이단 김성도의 사상은 그 위에, 1917년에 정도교(正道敎)를 창시한 이순화가 있고 그 다음 세대에 등장한 '남방여왕'이라는 존재가 있다.
상식적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해괴망측한 '교리'이니 상식적으로는 어떤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교리다. 하지만 독립된 한 개인을 집단에 집어넣고 집단최면을 걸고, 집단세뇌를 반복하면 어느 틈엔가 헤어날 수 없는 지경에 빠진다. 그 다음에는 집단적으로 '가스라이팅'을 하여, 자기 최면을 걸도록 만든다.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 역량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훈련된 조력자들도 필요하다. 그래서 강력한 이단에도 강력한 교주만이 아니라 강력한 스승이 있고, 끊임없이 보완해줄 참모진이 존재한다.
깊은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도, 항상 1등을 하여 성공의 문턱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일류 대학 일류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공을 욕망하는 사람은 이단에 취약하다. 현실을 냉철하게 자각하는 3류 대학, 3류 직장인보다, 근거없는 우월감에 빠져 더 높은 자리, 더 큰 성공을 갈망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 욕망의 크기만큼 이단에 취약하다.
이단은 언제나 성공을 약속한다. 모든 공포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한다. 그 집단 속에 있을 때, 그 집단이 발현하는 열기 때문에 굉장한 안전감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도취된, 가열된 감정 속에서 느낀 것이며, 그 어떤 것도 실현된 것이 아니다. 마치 환각에 빠진 것과도 같다. 도박에 중독된 것과 같은 증상이다. 그렇다. 이단은 환각과 자아되취에 중독시키는 기술체계이며, 그들에게 성(性)은 서로를 얽어매는 매력적인 도구일 뿐이다.
이단에 대해 오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이단에 빠지면 구원을 상실하고 지옥에 간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이단은 지옥행이다. 이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무엇이 오해인가 하면, 현실에서의 삶은 문제가 없고 단지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인지 지옥에 갈 것인지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이단은 엘리트를 선호하고 일류 직장인, 연예인, 대학교수, 방송국 PD, 고위관료 같은 사람들을 선호하고, 특별대우를 하고 특별한 관리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단에 빠지더라도 세상에서 성공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모범사례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단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 거의 모든 사람이 망가진 삶을 산다는, 망한 인생을 살면서도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고약한 일이 벌어진다.
우리 민족이 여느 민족과 달리 종교성이 많기 때문에 무속 및 이단이 많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지만 이는 헛소리다. 17세기 초반에 있었던 인조반정으로 인해, 노론과 서인이 국정을 농단하면서 세도정치 때문에 국운(國運)이 기울었고,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서민과 그 이하의 계층은 본격적으로 희망없는 삶을 이어갔다. 19세기 말에 들어서면서는 열강의 침탈에 시달렸고 20세기 초에 국권을 상실했다. 그 간난의 삶을 서민들이 무슨 힘으로 버텨냈을까? 이럴 때 사람들은 종교를 의존하는데 현실에서 희망이 없을수록 비정상적인 종교에 매달린다.
민족이 비극과 혼란을 겪는 상황에서 '이단'이 발생하고 놀랍도록 성공한 탓에, 소위 정통교회, 정통교단에 속한 이들이 그 비결을 '훔쳐내기' 위해 이단집회를, 이단자가 진행하는 세미나 혹은 공부방을 들락거렸다. 이단종파에서 이탈한 이들이 무리를 지어, 몸에 익힌 기술을 활용하여 '교회'를 개척하거나 부흥시킨 경우도 있다.
한국에 유독 대형교회가 많은 데에는 산업화와 도시화, 경제성장이 큰 기회를 제공했지만 교회가 대형화를 이룰 수 있는데에는 이단종파에서 사용하는 기법들, 혹은 이단들이 좋아할만한 수법들을 사용했고,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러다보니 대형교회들과, 대형교회가 되고 싶은 교회들은 어딘가 모르게, 이단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 상식적이고 정상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거나, 정통적 신앙체계를 익힌 사람들이 견뎌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어간다. 그리고 이단종파의 불합리성, 비(非)기독교적 특징들을 엄밀하게 비판하기가 어려워진다. 점점 그렇게 되어간다.
교회는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이단과 비슷한 약속을 내놓는다. 세상에서의 성공이라는 약속을 내놓는다.
|
|
|
교리(敎理)의 역할
조직신학의 중심 내용은 '교리'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신학교 학부과정에 입학하면서 실제로 부딪히게 된 신학공부는 생경한 전문용어(신학용어)들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고, 각 용어들과 그 배경에 있는 개념들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한 지적 전쟁에 다름 아니었다.
나는 '교리'라는 것이 기독교 신학에만 있는 줄로 알았다. 그러다가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소하여 군사훈련을 받기 시작하면서, 교관과 조교들이 훈련병들에게 가르치는 모든 것이 '교리' 즉, '군사교리'로 엄격하게 체계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몹시 신기해 했다. 오늘날 미국 육군에는 '미국 육군 훈련교리사령부(United States Army Training and Doctrine Command, 약칭 TRADOC))'라는 기능사령부가 있다.
모든 군인은 각각이 맡은 군사적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할 것들을 '교리' 형태로 배운다. 새롭게 부대를 만들 때에도 이에 관련한 '교리'가 있어서 그 교리에 따른다. '군 현대화'라는 것도 신식 무기를 도입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무기와 관련된, 그리고 그 무기를 운용하는 부대 편제와 부대원들에 관련된 '교리'를 바꾸고 이해하는 과정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평상시에도 군인들은 적국 군대가 수립한 군사교리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군대에서 채용하는 교리들을 수집하고 연구한다. 그리고 자국의 군사교리를 끊임없이 검토하고 수정하고 보완하고 발전시킨다. 그래서 ' 군사교리 발전에 영향을 주는 지배적인 요소에 관한 연구'(한국군사학논총, 2016년)라든가 '군사교리의 정의'라는 논문들이 발표되기도 한다. '교리'(敎理 즉, doctrine)이라는 용어가 군사분야에서도 폭넓게 사용된다는 용례가 아니라 '교리'라는 것의 기능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은 생존을 위해, 생명을 존중하고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살도록 서로를 도와주고 서로를 지켜주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은 마을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군대'는 이에 정확하게 반대된다. 군대는 죽이고 파괴하기 위해 존재한다. 적군을 죽이는데 조금이라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적군이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확실하게 파괴해야 한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을, 비정상적이며 비도덕적이며 반사회적일 수 있는 행위를 능숙하게,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교리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이 도무지 알 수 없는 깊은 '신비'의 세계 즉, 종교의 세계를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의 이해력에 맞춰 설명해주기 위한 개념장치들이기도하고,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즉, 기독교 교리는, 기독교 세계와 비기독교 세계의 접점에 서서 비기독교 세계에 속한 사람들에게, 비기독교적 세계에 속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기독교 세계의 신비를, 그 내면세계를 설명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다시 말하자면, 복음의 실체는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줘도 그래서 사람이 아무리 들여다보더라도 파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사람의 언어와 사상체계를 활용하여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교리'다. 바로 이 점이 주문( 呪文)과 다른 것이다. 주문이란 그 단어 혹은 문자의 진짜 '의미'와는 상관이 없이 단지 반복해서 외우기만 하면 어떤 특별한 능력이 나타난다고, 혹은 신령(神靈)한 영험(靈驗)한 무엇인가를 불러낼 수 있다고 믿는 문자들을 가리킨다. 주문은 '교리' 즉, 납득이 되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테면, 불교의 경전 가운데 하나인 '천수경'( 千手經)은 한국의 불교신자는 누구나 다 외우는 경전이다. 한국불교는 이 천수경을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천수경에는 '옴 마니 반메 훔'(원래의 발음, 옴 마니 파드메 훔)이라는 주문(진언)을 반복하는 부분이 있다. '옴 마니 받메 훔'이라는 단어들의 의미는 '옴, 연꽃 속에 있는 보석이여, 훔'이라고 한다.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지 '옴 마니 반메 훔'이라는 어구를 계속 반복하면 '관세음보살'이라는 전능자를 불러내어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주문이기에 그렇게 믿고 반복한다. 왜 그렇게 믿느냐고 물으면, 만일 제대로 된 종교라면 그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부단한 노력, 반복되는 시도는 실패를 했더라도 의미있는 흔적을 남긴다. 이것이 건강한 종교다. 기독교든 불교든 각 종파가 주술에 빠지고 미신에 빠지면 그만큼 교리에서 멀어지고, 자신의 믿음을 합리적인 용어로 상식적인 차원에서 설명하기를 거부한다. 교리를 명확히 하는 것은 신자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이며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안다는 것이며, 자신의 믿음을 불신자에게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라는 말을 깊이 새겨 봐야 한다.
|
|
|
법무부 장관과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와 관련된 국제 현안을 다루기 위해, 유럽 4개국인가를 차례로 방문하기 위해 출국할 때, 과시하듯이 전쟁사의 고전 투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를 옆구리에 낀 자신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도록 '연출'했다.
정말이지, 과시할 목적이 아니라면 군사학 매니아라고 할지라도 꼼꼼이 읽을 필요성을 느끼기 힘든 책이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같은 책이다. '고전에서 길을 찾는다'라는 명제를 제시하면서 고전 읽기를 권하는 경우는 거의 대부분 출판사의 마케팅이라고 보면 된다. 고전을 읽는 것은,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 때 읽는 것이 옳다. 고전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고 해서 무조건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읽으면 무엇인가를 얻는 것도 아니다. 고전을 읽은 티를 내기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알아줄 사람들이 있을 때에야 가치가 있는 법이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은 대략 B.C 5세기 후반의 약 30년 동안,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레폰네소스 동맹과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지금의 그리스 남부에 점점히 흩어진 도시국가들이 육군을 중심으로 한 군사강국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스파르타의 국가체제와 군사력에 한계를 보이면서 국력이 기울고 있을 때, 해양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힘을 갖기 시작한 신흥강국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형성하면서, 스파르타와 펠레폰네소소스 동맹의 패권을 점차 위협하기 시작했다.
아테네와 델로스 동맹이 세력을 확대한다는 것은 스파르타와 펠레폰네소스 동맹의 세력권을 잠식한다는 의미이고, 해양력을 근간으로 한다는 것은 지중해 동부의 경제력이 해상무역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기에 아테네는 더욱 강력하게 성장할 것이고, 펠레폰네소스 동맹을 와해시켜 스파르타를 가난하게 만든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스파르타 입장에서는 아테네가 더욱 강력해지기 전에, 아테네를 굴복시키고 아테네의 성장을 중단시키고, 오히려 아테네의 상업능력을 스파르타가 흡수하는 것이 좋다는 식의 결론을 스파트타가 도출하고, 적절한 기회에 스파르타가 아테테와 전쟁을 개시했던 것이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은 일단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다. 아테네는 멸망하지 않았더라도 아테네가 만든 델로스 동맹은 해체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그리스 남부의 도시국가들은 연이어 전쟁을 벌였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그리스 남부 전체가 쇠락하기 시작했다. 작은 도시국가들이 생존을 위해 누구 편을 들었든간에, 그 전쟁의 승자가 누구든 간에, 최종적으로 그리스 북부 산악지대의 가난한 나라 마케도니아 왕국이 패권을 쥐었다. 알렉산더가 등장했던 것이다.
한동훈 법무장관 덕택에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신박한 개념이 여기저기에서 회자한다. 마치 역사학의 고전이며, 전쟁사의 위대한 시발점을 만든 투키디데스가 신묘한 비책을 제시한 것이나 되는양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런데 실상, 헛소리에 불과하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해양세력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한반도 지정학 이론, 부산적기론, 이런 썰들이 아무리 논리적인 것처럼 보여도 다 헛소리다. 우리나라의 운명을 파탄에 이르게 한 가장 유명한 헛소리는 1880년 김홍집이 일본에 수신사로 갔을 때, 일본주재 청나라 공사관의 참사관 황준헌이 김홍집을 설득하기 위해 보여준 <조선책략>이라는 외교방략서였다.
이 헛소리를 진리라고 믿은 이들이 힘을 모아 흥선대원군의 '국가개혁'을 좌절시켰다. 아무런 준비없이 문호를 개방하고,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의 야심과 전략을 읽지 못한 채 강대국의 도움만을 바라며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강대국의 이익에 따라 조리돌림을 당하고 국권을 빼앗겼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인간은
내 힘이 없더라도 남의 힘을 빌리면 되고,
내 머리가 나쁘면 남의 머리를 빌려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이런 인간은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
|
|
|
좋아요, 구독, 그리고 가입을 눌러주시고 물심양면의 후원은
동영상 제작과 미디어 선교활성화에 큰 도움이 됩니다.
질문 혹은 의견을 아래 이메일 주소로 보내주시면, 성심을 다해 반영하겠습니다.
All Rights reserved
본 메일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 유포하는 것을 허락합니다. 발췌하여 다른 미디어에 포함시키거나 전제하는 것은 저작권자로부터 별도의, 명백한 허락을 받아야 하고, 허락 받은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