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한 뽕에 취한 설교에는 미래가 없다!
신학교(학부)에 입학할 때, 학사학위가 없는 소위 '각종학교'로 간다고 하자 담임선생님을 비롯하여, 친구들도 하나같이 말렸다. 고2 때 담임선생님도 알고는 말렸다. 일반대학에 진학한 뒤에, 신학대학교로 진학하라고 설득하셨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은 고민 끝에, 당시 학교 교목이던, 훗날 지구촌교회라는 유명한 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한, 지금은 은퇴한 이동원 목사님께 나를 보내 상담하도록 하셨다.
사당동 총신대로 진학하면, 평생을 보장해줄 수 있다는 분도 있었고, 수원 남쪽 한적한 교외지역에 자리잡은 한신대를 추천하고 권면하던 친구도 있었다. 처음 교회에 출석하던 때부터 성경공부를 지도하던 교회학교(학생부) 지도교사들은 한결같이, 서울 상계동에 위치한 성서대학(당시, 성서신학교)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던 이들이었다. 당시 성서신학교 출신들은 총신대 출신보다 실력이 낫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성서신학교를 졸업한 뒤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이 신학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코스라고 들으면서 교회생활을 했다.
하지만 나는 안양 성결교신학교라는 '각종학교'를 선택했다. 각종학교란, 대학 수준의 4년제 교육을이수하지만 '학사학위'는 없고, 다만 학력을 인정받기에 '대학원'에 진학을 하여 석사 박사 학위는 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과정이다. 학위 모집요강에, "이와 동등한 학력이 있다고 인정된 자"라는 단서조항에 해당되는 자격이 있는 고등교육 과정이다.
따라서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반에서 죽어라고 공부한 '시간'과, 대학진학을 위한 '예비고사'가 쓸모없는 학교를 선택한 셈이다. 더군다나 청소년 시절에는 한 번도 몸으로 겪어본 적이 없는 '성결파' 신학교에 진학하는 것인데, 신학교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정확하게 체감하게 사실은, 고등학교 시절 내게 가장 많이 영향을 미쳤던 교역자 즉, 학생부 담당전도사, 담임전도사를 거쳐 담임목사로 사역하신 분이 성결교회 출신인데, 그게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칼빈주의 신학은 책을 보면 그 특징들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웨슬리 신학 특히, 성결파의 신학은 책으로 감을 잡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미국 장로교 출신의 유명한 부흥사 찰스 피니(Charles Grandison Finney, 1792~1875)가 웨슬리의 서적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독특하게 '(오벌린) 완전주의'를 제창한 것에 대해 장로교 신학자들이 찰스 피니가 웨슬리 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할 때, 성결파 신학자는 그 말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신학교를 선택하여 진학할 때, 나의 목적의식은 뚜렷했다. 신학도 학위도 목적이 아니라 '신앙' 그 자체를 알고 익히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것도 '신학적 자유주의가 말하는 신앙'이 아니라 '보수주의적 신앙'이라고 분명히 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큰 난관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수주의적 신앙'이라는 표현에서 '보수주의'라는 신학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놀랍게도, 신학교수들도 정확하게 말해주지 못했다. 정말 혼란스러운 것은 신학교수를 찾아가 물어보고 대화를 하는 중에 교수님들이 말하는 것이 진실되고 정확한 답변이고, 내가 그 답변에 만족하지 못하는 원인이 바로 내게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된다는 점이었다.
결론은, 내가 내 자신의 인식력, 이해력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인데, 신학의 역사와 분류를 설명하는 읽을수록 그 신학사상을 설명하는데 사용된 용어들을 정확하게 모른다는 사실이 더욱 깊이 드러날 뿐이었다. 무지를 자각함으로써, 그 무지를 없애기 위한 길고 힘든 신학공부를 그렇게 시작하게 된 셈이다.
신앙을 익히기 위해 신학교에 진학했으니, 아침마다 1시간씩 성경을 읽는 것으로 하루 학과를 시작했다. 개역판 성경에 만족할 수 없어, NASB를 읽었다. NASB를 선택한 것도 내가 성장한 교회로부터 받은 영향 탓이다. 미국의 보수적인 교회들이 NASB를 읽는다고 하였고, 내 모교회가 NASB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특이성은 KJV의 역사와 차이점에 흥미를 갖게 했고, 결국 비교해서 읽게 되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1년을 더 쉬고, 1985년에 3학년으로 복학하면서 부터는 NIV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씻어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대략 10년 뒤에, 평택에서 담임사역을 시작했고, 다시 10년쯤 뒤에 서울로 사역지를 옮겼다. 오늘 돌이켜보면, 신학이 아닌 신앙을 배우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한다는 생각은 나의 지혜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
얼마나 큰 은혜인고 하면, 무수한 지뢰가 깔린 드넓은 평원을 가로질러 뛰었으나 단 한번도 지뢰를 밟지 않고 지뢰지대를 무사히 빠져나간 느낌에 비유하면 적당할까?
보수주의적 '신앙'의 실체를 알고 싶었던 것이 나로 하여금 신학교 도서관의 대출창구를 거의 매일 방문하게 만든 첫 번째 주제라고 할만하다. 보수주의 신앙 및 신학의 뿌리를 신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규명하는 것과는 별개로 여기에도 지뢰가 몇 개 붙어있다.
첫째가 반공주의라는 지뢰이다. 둘째가 부흥주의라는 지뢰이다. 셋째는 사대주의라는 지뢰다. 넷째는 병든 애국주의라는 지뢰다. 굵직한 주제만 열거해도 이 4가지를 뽑을 수 있다. 이 4가지를 조심스럽게 정리해야 건강한 보수주의 신앙의 실루엣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건강한 보수주의라는 경향성을 크게 벗어난 '병든 보수주의'가 횡행한다. 본래 신앙 및 신학에는 '보수주의'라는 용어가 적당하지 않다. 로마 가톨릭의 교황주의, 루터주의, 칼빈주의(개혁주의), 앵글리카니즘 등과 같은 용어가 훨씬 더 정확하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미국 기독교계에서 종교적 자유주의 즉, 독일의 비평주의 신학에 대항하는 경향성을 아우르는 '보수주의'(conservatism)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이 용어가 한국에 들어왔고, 반공-애국주의적 경향과 결부되었다.
반공-애국주의 성향이 한국적 보수주의 신학을 낳았는데, 그 성향이 최근에는 '뽕 맞았다'라는 말을 써야할 만큼, '환각증세'를 보일 정도로 심화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보수적 신앙을 견지하는 성도들 모두, 그리고 보수적 교회들 모두가 다 '뽕'을 맞았다는 뜻이 아니다. 뽕을 맞았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점점 더 눈에 띈다는 뜻이다.
뽕을 통해 '환각'을 이미 맛보았고, 그 환각증세를 탐닉하게 되고 환각에 취한 상태를 끝없이 지속하고자 하는 욕망에 굴복하게 된다. 마약전문가들은 '대마초' 즉 '뽕'을 입문용 마약이라고 한다. 마약성이 약해서 본격적인 마약으로 취급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이긴 하지만 '대마초'라는 입문을 거친 뒤에는 본격적으로 마약에 빠져들며, 한 번 중독되면 거의 끊을 수 없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파멸과 불행 뿐이라고 한다.
사악한 종교인들 중에는, 설교를 통해 뽕을 주사하듯, 청중을 환각에 빠뜨리는 기술에 능한 사람들이 있다. 천재적이라고 할만한 '재능'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심리학에서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그 기술, 그 재능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수백명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반복적으로 찬양을 시키고 감정을 자극하여,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리는 것은 훨씬 더 쉬운 일이다. 작정하고, 이단사이비가 되는 것을 무릅쓰면, 훨씬 더 강렬하게 그 기술을 사용한다. 이들은 청중을 구성하는 각 개인들의 인격이 파괴되고, 그들의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되도록 더욱 유도한다. 그래서 이단사이비가 나쁜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그 설교기법을 채용하고 연습하고 숙달하는 사람들도 있다. 뽕에 취한다는 것은, 환각상태에 빠지고 환각상태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그 행동결과 무엇이든 자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환각' 그 자체를 즐긴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설교하면 성경이 제대로 보일까? 성경을 제대로 전달할까? 이런 설교에 길들여진 사람이 성경을 제대로 볼까? 불가능하다.
현실을 바라보면서 환각에 빠지면
현실을 현실적으로 보지 못한다.
설교는 종교적 만족감을 채워주는 행위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을, 그리고 자기 자시늘 냉철하게 바라보고 자신이 처한 상황, 그 실상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좋은 설교는 그러한 실상을 정확하게 알고, 그 현실을 개선하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리하여 그 인생을 바꾸도록 하는 행위이다.
그 기준이 '기록된 하나님 말씀'이기에 거룩한 것이며, 변혁의 힘을 전달해주는 것이니 '능력' 즉 하나님의 능력이다. 보수주의 신학이란 보수주의 신앙을 보존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신학이라고 개념을 정리해도 될 것이다. '보수주의 신앙'이란 그 본질이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으면서 그 속에서 생명을 얻고 생명의 능력을 강화하는 그 길을 가는 믿음이라는 뜻이다. 말씀을, 성경에 써있는 그대로의 참 뜻을 드러내는 믿음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믿음이어야 비로소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