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 교회 변혁
한국교회가 썩었다는 말은 이미 너무나 식상한 말이 되었다. 썩었다는 것은 그 상처 부위가 치유력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도려내는 것이 정답이다. 도려내고자 한다면 근원까지 충분히 메스를 대야 한다.
'로마제국 쇠망사'라는 유명한 저술을 통해 그 저자인 에드워드 기봉은 로마제국의 쇠망은 제국의 군사력,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한, 혹은 상당한 정도로 쇠퇴한 시기가 아닌, 제국의 전성기에 주목한다. 기봉이 주목한, 그래서 '쇠망사'의 서술 시점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할 무렵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통치시기 쯤으로 잡는다.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로부터 시작하여 다른 4명의 황제들이 다스린 시기를 소위 5현제 시대라고 하는데, 로마제국의 황금기라고 일컫는 시기다. 황금기라는 '정점'을 지나면서 하향곡선을 그렸다고, 후세의 연구자들이 판단한 것인데, 만일 그 황금기에 제국을 더욱 발전시킬 동력과 체계가 있었다면, 결코 정점을 이루지 않았을 테고, 상승곡선을 더 높이 그렸을 것이다.
에드워드 기봉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로마제국의 쇠락에 크게 기여한 것이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기독교'가 문제라는 시각이다. 기독교의 중심원리인 '유일신' 신앙이 다신교적 다양성을 근간으로 하여 성립되고 발전해온 로마인들의 기풍을 손상시켰다는 생각이다.
종교에 대한 에드워드 기봉의 편견을 제외하면, 쇠락기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모순들은 그 쇠락기 이전 즉, 전성기 때에 씨뿌려지고, 성장하고 있었지만, 전성기의 화려함과 번영에 가려져 있었다. 선각자와 같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문제의 심각성을, 그 증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기 전에 알아차리고 개혁을 시도한다.
선각자들의 개혁은, 황금기를 구가하는 번영의 단맛을 가장 크게 맛보는 기득권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번번히 실패한다. 반복되는 실패 속에, 손쉽게 바로 잡을 수 있는 적절한 시기를 놓친다. 체제의 모순과 쇠락은 당시의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제대로 보이지 않고, 별 탈 없이, 늘 살던 그대로 살아간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제국이 소멸되어가고 있었다. 제국이 소멸되고, 더이상 번영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에는 패망과 다를 것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류층과 하류층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모두가 패자일 뿐이다.
이러한 통찰을 한국교회에 적용해보면, 우리의 감각기관들을 통해 파악되는 현상들은 상처의 썩은 부위들이지, 그 상처의 시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에드워드 기봉의 통찰을 따르자면, 한국교회의 지난 과거에서, 화려했던 시절에, 그 화려함을 불러온 그 어떤 시기의 모습을 들여다봐야할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못난 모습들은 70년대~80년대의 부흥기에서 뿌려진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야 그나마 제대로 본다는 뜻이다. 더 거슬러올라가면, 1907년 대부흥운동의 방법과 그 시기의 교회제도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거기에서 원인을 찾아 지금이라도 바로잡는 것이 개혁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썩은 상처의 계속 진행되는 부패를 차단하고 문제 부위를 완벽하게 드러내면 한국교회는 건강해진다. 이것이 개혁이다.
그런데 최근의 시대적 흐름은 "혁신"이라고 할 정도의 변혁이 요구되는 시대다. 인공지능(A.I)의 발전은 너무나 눈이 부시다. 물리적 1주일이 10년의 세월만큼 엄청난 변화를 야기한다. 지금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는 이 변혁의 흐름은 지난 수백 년에 걸쳐 인류가 경험한 변혁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어떤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할 시대다.
국내외의 유명한 연구가들은 인공지능(A.I)가 10년 이내에 거의 완벽하게 대체함으로써, 사라질 직업 가운데 하나가 '의학' 특히 영상의학 분야이며, 또 다른 분야를 고르라면 '법률가'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목사" 특히 설교자라는 직종이 조속히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70년대~80년대에 한국사회가 산업화, 도시화를 이룰 때, 유수한 교단들은 신학교를 이용하여 대량으로 '목사'를 배출했다. 100여명 정도가 신학수업을 받았는데, 이 가운데 소수만이 정규적인 학위를 받고, 나머지는 졸업장을 받았지만 실제로 졸업식 날에 졸업장을 받는 인원은 8백명에 달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각 교단은 이렇게 졸업장을 주면,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은 어떻게든 교회를 개척하고 목사안수를 받으니 교세가 늘어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문제는, 이들이 어떻게 신학을 공부하였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무의미하고 내용없는 신학수업은, 무의미하고 내용없는 설교를 반복하고, 그 공허함을 겉치레 뿐인, 따라서 위험한 '권위주의'로 채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된다. 목사들의 설교 대부분은 모양만 '종교적'일 뿐이고 여기저기에서 베낀 것이다. 예화집을 베끼고, 주석을 베낀다. 심지어 다른 설교자의 그럴듯한 설교를 표절한다. 신학교에서 신학을 제대로 통달하지 못한 채 졸업을 하고 목사안수를 받았으니, 여기저기 좇아다니면서, 좋은 자료를 얻고 표절하고 혹은 적당히 조미료를 쳐서 약간 다른 맛을 내는 기술을 익힐 뿐이다.
문제는, 예화집과 주석책과 설교집에서 이리저리 자료를 짜집기해서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설교', 이런 설교야 말로.. 인공지능(A.I)가 자신의 특기를 가장 잘 발휘하는 영역이다. 불과 몇 년 안에, 인공지능(A.I)이 작성한 설교문을,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가상의 목사'가 설교하는 그런 예배를 드리는 신자들, 그런 새로운 기독교가 등장할 것이 뻔하다.
이런 변혁에 대응하기 위한 개혁 즉, 변혁이 필요한 시대다. 하나님께서 무슨 대책을 세우실 것을 마냥 기다리만 있어서는 안 된다. 게으름을 부리면서 변혁의 시기를 놓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아무런 결실을 맺지 않은 사람들을 하나님은 복을 주시지 아니 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개혁을 위해 전력투구해야 하고, 변혁을 따라잡기 위해서도 힘을 다해야 한다. 지금은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