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04.]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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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가들을 존경하는 방법 !!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에 있어서, 그 누가 칼빈인지, 루터인지, 웨슬리인지 등등, 그 대표적인 인물이야 달라지겠지만, 현존하는 정통적 개신교회는 모두 종교개혁의 후예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을 기념하기 싫은 사람들은, 누군지도 모를 사람이 설정하고 개량해온 어떤 "전통"을 존중한다.
분명한 것은 자신이 취하고 내세우고자 하는 어떤 전통이 "진짜"이며, 모두가 추종해야 한다고 주장함에 있어서, 오늘날에도 16세기~17세기 종교개혁적 성취를 중단없이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종교개혁을 부르짖는 이들의 한결같은 자부심은 자신들의 정신, 노선, 주장이 "성경"에 뿌리를 박고 성경의 깊은 것을 끌어올려 승화시킨 것이라는 데에 있다. 그런 점에서 성경적이라고 자랑하면서, 일일이 열거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칼빈주의자들은 주로, 칼빈주의 5대교리를 내세우면서, 그 5대교리를 수정없이 타협없이 즉각적으로 믿고 고백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웨슬리-알미니우스주의자들은 "교리"라는 간접적 혹은 인위적 산물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성경을 천착하고, 성경을 거기에 써있는 그대로 믿고 따르고자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성경의 주요 가르침들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요약 정리하여 단 한순간도 잊지 않고, 예배와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 이전에,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이 있다.
종교개혁 정신을 다른 용어를 써서 표현한다면, 교회개혁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핵심 표현 중에서도 "에클레시아 레포르마타, 셈페르 레포르만다 에스트"(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라는 표어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 라틴어 표어를 영어로 옮기면 "the church reformed, always reforming"이 될 것이다. 우리 말로는,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이다.
이 표어는 우리에게, 종교개혁가들의 교리적 핵심들을 외우고 실천하는 것이 결코 본질적 목표가 아니라는 교훈을 준다. 즉, 종교개혁가들의 사상에 있어서 "교리"는 교회를 개혁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의사들이 각종 병의 원인과 세균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추구하지만, 의사의 본령은 세균, 질병의 본질을 철저하게 파악하는 것에 있지 않고, 그 철저한 연구와 파악을 통해, 세균을 퇴치하고 사람의 질병을 고쳐,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 최대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언제나 그 질병과 더불어, 그 사람(환자)에게 주목해야 한다.
교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할 직분자는 목사와 장로다. 이들은 교회를 책임지고 있다.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점에서 사람을 중시해야 하지만,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는 것에서 그 책임을 온전히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데까지 시야를 넓히고, 목적의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따라서 사람의 부패와, 사람의 부패로 말미암아 교회가 부패하는 것에 민감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회의 직분자들은 교회의 부패, 기능의 비정상화 및 부실 그리고 부작용에 주목하고, 그리한 왜곡되고 부패한 기능을 바로 잡는데에 힘을 쏟아야 한다.
부패를 지적하고 질타하는 것은 정말이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부패를 미연에 방지하고, 발생한 부패와 싸워서 교회 밖으로, 신자의 삶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 교회 직분자들의 사명이다. 마치 환자의 피부, 근육, 혹은 골수에 파고든 "고름"을 뽑아서 몸 밖으로 버리는 것과도 같다. 혹은,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불량한 요소들을 걸러내어, 혈액이 부패하지 않도록 하고, 혈액이 몸에 필요한 것을 신체 곳곳에 있는 세포에 전달해주고, 세포가 활동하면서 발생하게 된 나쁜 요소를 간이나 신장에서 정화하고, 혹은 걸러내어 몸밖으로 버리는 것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교회직분자들이다.
물론, 교회의 중직자들, 중진들만의 사명이 아니다. 모든 신자가 신자의 삶이 거룩하고 경건한 그 마땅한 도리와 자세를 갖추지 못하도록 가로 막는 모든 나쁜 것에 맞서서 싸워야 한다. 교회가 신자들을 교육시키고 제대로 가르쳐야 할 최종적인 것은, 성경이 반대하는 모든 나쁜 것을 볼 때, 그 악에 맞서 과감히 싸우는 정신이다. 모든 신자는 그 정신을 길러야 한다. 그 정신을 존중하고, 그 정신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할 줄 아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교인들이 성경이 반대하고, 하나님께서 혐오하는 나쁜 짓을 할 때, 교회가 부패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악" 및 "부패"와 싸우기를 거절하고, 자신의 골방으로 숨어들어가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안락한 삶을 도모할 때 교회의 부패가 시작된다.
악은 그 비겁한 자의 그늘에 숨어서 커간다. 용감한 척하는 이의 등뒤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리며 기회를 엿본다. 그 시커멓고 위험한 그늘을 외면한채 종교개혁 교리를 부르짖는 것은 위선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 위선이 커갈수록 하나님의 능력, 경건의 능력은 사라진다. 그러나 약하지만 용기를 되찾을 때, 능력도 회복된다.
이렇게 악에 단호히 맞서고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악은 그 그림자라도 용납하지 않고 기필코 몰아내겠다면서 실천을 시작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개혁가들을 존경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고, 그들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고귀한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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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주의, 그 모순
역사를 공부해보면, 세상에 둘 도 없이 무식하고 무능하고 배은망덕한 쓰레기가 유대민족이다. 물론, 성경 기록에 거론되는 유대민족과, 오늘날 중동 땅에 하나의 국가를 건설한 이들을 포함하여,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민족"을 동일하다고 여기는 것에는 나는 반대한다.
성경에서 언급된 "유대인(들)"과 오늘날 "유대인(들)"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시하는 것은, 마치 오늘날 북한 땅에 사는 "조선인들"과, 만주를 포함하여 중국에 사는 "조선족"과,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사는 "고려인들"을, 지금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 땅에 사는 이들과 동일시하여 모두 "대한민국 사람들"이라고 부른 것과 매한가지다. 아니, 어쩌면 이보다 더 심한 왜곡일 것이다.
성경을 꼼꼼이 따져보면, 민족으로서의 "유대인들"은 야곱의 12 아들에서 자라나온 "12지파"에 속한 혈통적 후손들이다. 즉, 유대민족의 분명한 "시조"는 "야곱"이라는 말이다. 민족으로서의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라 야곱의 후손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말에는, 이스마엘의 후손과, 후처인 그두라의 후손들도 포함함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후사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자식"이어야 한다면, 이스마엘의 후손들과 후처 그두라의 후손들이 제외되더라도, 야곱과 더불어 "에서"의 자손도 분명하게 포함된다.
그러므로 유대민족을 정의할 때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자손이 아니라 야곱의 열 두 아들, 12지파의 자손이라고 해야 맞다. 바로 그 12지파의 자손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고, 광야에서 12지파의 진을 편성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고 정착하도록 정하셨다. 유대민족의 정통성을 보장하는 족보는 광야에서 "정비"되었고, 그 족보와 더불어 "땅"을 분배받았으니, 이 족보에 적힌 조상의 자손들이라는 것과, 가나안 땅을 구체적으로 분배받은 이의 자손이라는 것이 유대민족의 실질적은 표징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믿음과 약속"의 조상이다.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며, 그런 뜻에서 열국의 아비와 열국의 어미라는 호칭을 하나님께로부터 선사받았다.
이러한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헛되이 도전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예수님 당대의 유대인들이다. 자신들이야말로 혈통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점에서 "진짜 유대인"이라고 예수님께 우긴 것이다. 진짜 유대인이라고 우길려면, 야곱의 자손이라고 해야 맞다. 하지만 구원은 혈통에 의거해서 받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참된 구원을 알고, 구원의 본질을 알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 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 당대의 유대인들이 가진 민족주의 감정을 "유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면, 정말이지 유대주의는 헛되고 헛된 것이다. 예수님을 거부하고 외면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기필코 죽였으니 말이다. 오늘날 유대주의도 헛되다. 여전히 예수님을 부인하고, 메시아닉 쥬라고 하는 변종 유대교 역시 여전히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잘못 믿고 잘못 가르치기 때문이다.
유대주의란, 주권적 은혜의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고 세상을 심파하신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파악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믿음과 결단, 자신들의 복음화를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가 실현된다고 믿고, 이방인 신자들은 유대인들의 민족적-혈통적 권위를 인정하고, 온갖 방법으로 유대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얼마나 엉터리 사상인지 철저하게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도 그 헛된 유대주의가 개신교 안으로 들어와 "세대주의"라는 기괴한 사상으로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이어간다. 허망하고 거짓된 사상에 물들지 않도록 우리의 생각과 지성을 파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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