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교회의 조건 : 성경을 알고 신학을 아는 목사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교를 들으면서, 그 설교자가 성경을 잘 알고 신학을 잘 아는 목사인지를 분별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곤 한다. 때론 설교비평을 주제넘은 짓이라고 민망해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그 설교를 듣는 자신의 부족한 지식과 얕은 신앙심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이런 발상처럼 어처구니 없는, 놀랍도록 잘못된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설교자는, 설교자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어떤 생각을,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를, 회중석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정확하게 전달해주기를 열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설교를 듣는 이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놀랍도록 감동받기를 희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명이다. 회중석에 앉아있는 이들은 설교자에게 주목하고 경청해야할 의무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예배를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자녀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말씀을 듣는 시간에 말씀을 잘 알아듣도록 요구하는 것은 회중의 책무를 다하기 위한 자세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회개시키고 본성의 변화를 일으켜서 거룩한 자녀로 만들고, 그 삶을 풍성하고 복되게 만들어줄 작정으로 주신 말씀이다. 그래서 성경은 능력의 말씀이다. 그래서 진리이다. 비록 정도의 차이, 수준의 차이는 있을 수 있더라도 설교자는 그 진리를 명확하게 파악하려고 발버둥치고, 명료하게 전달해줄려고 몸부림친다. 설교자가 자신의 기교를 통해 청중을 감동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진리에서 나온다.
설교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개념을 설명하려고 하는지가 청중의 귀에 명확하게 드러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설교자의 실패다. 설교자의 설교를 들을수록 그 본문의 의미가 선명하게 들어나지 못한다면, 앞뒤의 문맥을 알아볼 수 있게 되지 못한다면 이 또한 설교자의 실패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그 자신이 먼저 명확하게 하고, 청중의 입장에서 명료하게 메시지를 정리해야 한다.
어쩌다 하는 실패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실패를 반복하는 목사는 성경을 모르고 신학을 모르는 목사다. 좋은 목사가 아니다. 좋은 목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나쁜 목사다. 나쁜 목사가 강대상을 차지하고 계속 실패를 반복한다면, 그 설교를 개선하지 못한다면, 비록 지금은 좋은 교회일지라도 앞으로도 좋은 교회로 남아있을 수 없다.
물론, 아는 척하는 목사에게 속아넘어가면 안 되겠지만...., 실은 아는 척하는 목사에게 속아넘어가는 가장 큰 이유, 혹은 저 목사가 성경을 잘 알고 신학을 잘 알고 설교하는 목사인지 아닌지 잘 분간이 안 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설교를 들을 때 정말 성경을 잘 알고 평신도 위치에서나마 신학을 바르게 세우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설교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온갖 속된 욕망에 사로 잡혀, 그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죄악의 달콤함을 뒤쫓는 자신의 본색을 끌어안고 설교를 찾기 때문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좋은 교회를 원한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부터 중단해야 한다.
빛으로 나와야 빛의 능력을 경험하며 빛 가운데서 살 수 있다.
정직하게 살며 정직하게 설교하는 사람이 성경을 잘 알고 신학을 잘 아는 사람이다. |